예술가의 방 혹은 미메시스의 방

내게는 시를 쓰는 친구가 있다. 그는 합정동 어느 곳에 작은 오피스텔 하나를 전세 내어 작업실로 쓴다. 나는 자주 그 방으로 놀러 가는 걸 좋아하는데 그건 물론 그가 좋아서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의 방이 좋기 때문이다. 사실 좁고 조금 어둡고 늘 책이며 페이퍼들이 어지러운 그 방에는 좋아할만한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 방에는 나를 자꾸만 찾아가게 만드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 예컨대 그 방에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특별한 느낌, 그러니까 긴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온 듯한 편안함이나 오래 전에 잊었던 어떤 냄새와 해후하는 안온함이 그것이다. 그럴 때 나는 그 방이 내 친구의 방임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부터 내가 몸담아 살아가는 나 자신의 방 같은 공간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P. 발레리가 아마도 드가나 말라르메의 방을 두고 말했을 몇 줄의 글을 기억 한다: “예술가의 방은 낯설고 친숙하다. 그 방은 예술가만의 닫힌 방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는 방이다.” (P. 발레리, ‘방향계’)

 

노정하는 작업실 공간들을 사진 프레임 안에 담는다. 그녀가 보여주는 작업실의 풍경들은 다양하다. 그 풍경의 다양함은 무엇보다 작업실 공간에게 고유한 얼굴을 부여하는 인테리어 때문이다. 탁자와 소파, 피아노와 기타, 박제품과 인형, 그리고 그림이 들어 있거나 비어 있 는 캔버스와 액자들... 노정하의 사진들 안에 담겨 있는 작업실마다의 독특한 인테리어들은  우선 그 방의 주인과 그 주인의 취향과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사적인 정보들을 제공한다. 예컨대 벽에 걸려 있는 여고생 사진들의 액자는 그곳이 사진작가 오형근의 작업실임을 확인하게 하고 그랜드 피아노와 기타는 그 방의 주인이 화가일 뿐만 아니라 피아노와 기타를 즐겨 연주하는 음악 애호가임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인테리어 풍경을 통해서 노출되는 개개 작업실의 사적인 정보들은 보는 이의 은밀한 관음증을 충족시켜 주는 호기심의 재료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사적인 정보들은 역설적으로 개개의 작업실들을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방어해 주는 은폐적 시니피앙들로 더 강하게 작용한다. 왜냐하면 오직 그 공간에게만 속하는 인테리어 풍경의 사적인 정보들은 그 방을 그 누구의 방도 아닌 그 방의 주인만의 방으로 만드는, 그래서 본질적으로 그 방을 낯설고 밀폐된 방으로 만드는 공간적 특수성의 정보들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인테리어 풍경을 통해서 노정하가 보여주고자 하는 건 그러니까 사적인 정보들이 아니라 그러한 사적인 정보들이 숨겨주고 있는 개개 작업실 공간의 개인성이다. 작업실은 노정하에게 낯선 방, 그 작업실의 주인에게만 속하는 그 작가만의 고유한 방이다.  

 

노정하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작업실의 특별한 공간성이 그러나 개별적이고 고유한 성격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다. 노정하가 보여주고자 하는 작업실 공간의 특수성은 공간의 개별성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탈 개인적 성격을 지니는 공간성이기도 하다. 작업실 공간의 그러한 탈 개인적 공간성은 노정하의 사진 안에서 인테리어와 더불어 중요한 의미 지시적 시니피앙이 되고 있는 빛의 효과를 통해서 드러난다. 노정하의 프레임 안에 들어 있는 작업실 공간들은 저마다 다른 면모를 지니지만 언제나 커다란 창문이 있고 그 창으로 한웅큼의 햇빛이 들어와서 실내를 조명한다. 그 빛은 그러나 강렬하고 직선적인 태양빛이 아니라 부드럽고 분산적이어서 파스텔화적 시각 효과를 유발하는 우유 빛이다. 핀홀 카메라 특유의 그러한 중간 톤의 빛은 노정하의 사진 이미지 안에서 두 가지 기능을 동시적으로 수행한다. 즉 파스텔 톤의 빛은 한편 작업실 실내의 다양한 물건들을 조명해서 그 공간의 개별적이고 고유한 얼굴을 부각 시키지만 다른 한편 그 분산성 때문에 개개 사물들의 또렷한 경계를 완화 시키면서 사물들 사이에 일종의 뉴앙스적 관계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렇게 뉴앙스화 된 공간성은 개개의 작업실 공간을 더 이상 개별적이고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일종의 공유적 공간, 말하자면 누구나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는 친화성의 공간 이미지로 변모 시킨다. 그러니까 작업실은 노정하에게 탈 개인적 공간, 누구에게나 친밀함을 불러일으키는 열린 공간이다.

 

개인적 공간이면서 탈 개인적 공간, 낯선 공간이면서 친숙한 공간, 밀폐된 공간이면서 열린 공간 - 노정하가 보여주는 작업실 공간이 더블 바인드의 성격을 지니는 이중 공간이라면 그 이중 공간은 구체적으로 어떤 공간일까? 아니 작업실 공간을 이중 공간으로 만들면서 노정하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업실 공간을 이중 공간으로 만들면서 노정하가 보여주고자 하는 어떤 것은 무엇보다 그녀가 렌즈 카메라 대신 매체로 선택하는 핀홀 카메라 이미지 특유의 불투명성을 통해서 드러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핀홀 카메라는 렌즈를 사용하지 않는 작은 바늘 구멍의 광학적 한계 때문에 이미지의 불투명성을 극복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핀홀 카메라의 기술적 한계는 작업실 공간의 이중화를 통해서 노정하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종의 특별한 것을 재현하는 훌륭한 매질이 된다. 핀홀 카메라 이미지의 불투명성은 사물들 사이에 뉴앙스적 관계를 만들어내는 빛의 효과와 더불어 사진 공간 전체에게 일종의 비의적 분위기, 말하자면 아우라를 부여한다. 누구나 알듯이 아우라는 W. 벤야민이 더블 바인드의 공간 지각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특별한 공간 경험을 지칭한 이름이지만 그것이 단순히 멈과 가까움의 변증법으로 설명되는 공간 경험에 대한 이름만이 아니다. 아우라는 오히려 이중적 시공간 경험 안에 내재하는 어떤 특별한 인간학적인 것, 벤야민이 ‘미메시스’라고 부르는 인간 고유의 소통성에 이름이다. 미메시스는, 벤야민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주변의 낯선 것과 이질적인 것들을 친밀하고 친화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그것들과 상호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 고유의 지각성, 그러나 문명화 과정 속에서 추방되고 망각 되어 지금은 다만 예술 경험이나 특별한 공간 경험 안에서만 다시 눈을 뜨는 ‘잃어버린 친화성의 능력’이다. 아우라는 벤야민에게 다름아닌 이 미메시스적을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이며 역으로 미메시스적인 것은 언제나 아우라의 모호한 분위기를 통해서만 경험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아우라를 매개로 삼아서만 경험될 수 있는 미메시스적인 것은 아우라의 경험 방식이 그렇듯 언제나 이중적인 불투명성의 이미지, 즉 낯섬과 친숙함이 공존하는 일종의 데자뷔 이미지 경험을 통해서만 포착되고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노정하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작업실 공간의 이중화를 통해서 노정하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미메시스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핀홀 카메라의 모호한 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드러남과 숨김의 아우라 현상 안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다. 노정하는 말하자면 작업실 공간을 특별한 경험의 공간으로 만드는 미메시스적인 것을 직접적으로 포착하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다만 그 특별한 친화성의 능력이 보는 이에게서 스스로 눈 뜰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 다시 말해 핀홀 카메라의 불투명성을 통해서 자신의 사진 공간을 작업실 공간과 유사한 아우라의 공간으로 만들어 직접적으로 재현할 수 없는 미메시스적인 것이 사진 공간 안에 스스로 내재하도록 만든다. 노정하의 사진 공간 안에 담겨 있는 건 따라서 재현된 작업실 공간이 아니다. 그녀의 프레임 공간은 또 하나의 작업실 공간이다. 그리고 작업실 공간 안에 내재하는 특별한 것이 미메시스적인 것이라면 노정하의 사진 공간 또한 미메시스적인 것이 눈뜨는 특별한 공간이 된다. 우리가 그녀의 서정적이고 뉴앙스를 간직한 사진 공간 앞에서 발을 멈춘다면 그건 아마도 핀홀 카메라의 불투명한 이미지 속에서 눈뜨는 낯설고도 친숙한 미메시스의 특별한 공간 경험 때문일 것이다.

 

김진영/ 예술비평. 철학아카데미상임위원, 2008

Atelier or Memesis’room

A poet friend of mine lives and works in a small studio in Hapjeong-dong, Seoul. I love to visit there because I like him, and  really enjoy  the apartment’s atmosphere. It is small, dark, and disordered with books and papers. Curiously, there are few particulars of interest; it has instead something general that attracts me. There I feel tranquility and comfort, so sometimes, I fall under a delusion it is where I lived in for a long time. For Paul Valéry “An artist’s room is strange yet familiar to us. It remains closed for artists but open for us all.”

Jungha Noh photographs studio spaces in her own frame, which appears varied. Each photograph includes tables, sofas, pianos, guitars, and dolls, canvases, and empty frames, personal information suggesting an artist’s personality and taste. In one example, framed pictures of high school girls suggest a studio owned by photographer Hien-kuhn Oh; in another, a grand piano and guitar indicate a room owned by a music lover. Information like this does not just satisfy viewer voyeurism but functions as an element keeping each room secret, as it makes them appear somewhat unfamiliar, personal, guarded. Each space’s personal information implied by its interior scenes reinforces the fact that the room is exclusively owned by its dweller, eventually making it a closed, unfamiliar place. What Jungha Noh intends to present is not personal information but each space’s individuality. Jungha’s photographs capturing studio scenes are not merely for disclosing each studio’s individual, distinctive character, but for showing de-personalized spatial particularities, dependent on each studio’s interiors and light effects. Her studios appear diverse, but commonly have large windows through which a ray of light comes in and illuminates their interiors.

 

Her light is tender, dispersed, and milky, like a pastel painting. The intermediate tone, peculiar to the pinhole camera process Jungha uses, along with natural lighting, performs two simultaneous functions: it makes each studio’s distinct aspects stand out, and it blurs each object’s boundaries. The spatiality that results transforms each studio into intimate places anyone might access, because of its blurred familiarity. For the viewer, as for the artist, each studio opens up, becoming de-personalized, familiar to everyone.

But each studio also lives as a double bind: personal yet de-personalized; strange yet familiar; closed yet open. With them and the strangeness inherent to the pinhole process, Jungha Noh generates visible nuance and light effect that conjures mystical atmosphere in each photograph. What does Jungha Noh intend to show through this dual space? What she intends to present appears in obscurity peculiar to a pinhole camera image Jungha employs as her main medium, instead of a lens camera. It is well known that a pinhole camera cannot produce clear images with its optical limit. For Jungha’s art, however, it becomes an excellent medium to represent what she intends to show. Her entire photographic space is imbued with a mystic atmosphere or aura derived from obscure pinhole camera images and a nuance caused by light effects.

 

Aura, coined by Walter Benjamin to refer to a specific spatial experience, is not merely to indicate our spatial experience that can be explained by the dialectics of near and distant spaces. Aura is rather something humanistic inherent in our temporal and spatial experiences, or communicability Benjamin referred to it as mimesis. According to Walter Benjamin’s brief explanation, mimesis is our peculiar perceptibility through which we humans embrace something heterogeneous and unfamiliar after transforming them into something affinitive and familiar, in order to communicate with them. It is our capability for affinity which we lost in the process of civilization and just remains in our artistic and spatial experiences. For Walter Benjamin, aura is an atmosphere of mimesis which we experience only in an aura’s ambiguous atmosphere. Mimesis, as did aura, can be captured and experienced through dual, ambiguous images and déjà vu in which familiarity and unfamiliarity coexist. From them, we can see, what Jungha is actually showing is mimesis that reveals its existence between obscure pinhole camera images and aura atmosphere. She does not capture studios directly, to represent a place of mimesis; she instead makes photographs that present mimesis itself. Jungha’s photographs do not reproduce a workspace, they are the workspace, in visual pursuit of mimesis. And if each lyrical, nuanced photograph finally draws our attention, it is because we are actively in the experience of mimesis; in the beguiling, complete world of a photograph.

 

Kim Jin-young/ Academy of Philosophy Standing Committee Member, Art Criticism,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