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하가 만들어내는 차이와 여성

     노정하는 사진작업을 통해 자신을 알고자 한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말대로 ‘저주와 축복’을 동시에 부여받은 인간으로서의 여성의 팔자에 관한 것이다. 남성들에 비해 억압 받고 차별받아온 여성은 그로 인해 남성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보게 된다. 그것은 이 세계의 모순이 부르조아의 눈에는 띄지 않지만 프롤레타리아의 눈에 잘 보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사진을 통해 드러낸다는 것은 특별한 방법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있는 그대로 다큐멘타리를 찍는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성을 여성답게 만들어주는 이미지의 정치학에 개입하기 전까지는 온전하게 여성으로서의 자신에 대해서 말했다고 볼 수 없다. 어떤 사회에는 분명히 여성을 표상하는 특별한 이미지의 체계가 있는데, 노정하의 작업은 그런 체계에 대한 어떤 태도의 표명으로 보인다. 그 체계에 따라 여성은 태어나고 만들어지고 해체된다. 어떻게 보면 이미지의 체계에 따라서 태어나는 순간 여성은 해체되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남성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이렇게 저렇게 하면 예쁘게 보인다는 기준에 따라 자신을 꾸미고 몸가짐을 다듬는다. 그리하여 그럴싸하게 보이는 자신이 태어나는 순간, 그것은 자신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상징질서에 속한 한 부속품이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에 자신을 상징질서의 부속품으로 생각하는 인간은 없다. 누구나 체계 속에 살고, 체계화되지만 개별적인 인간이 체계 자체는 아니다.

사진에 푼크툼이 있듯이 체계에도 푼크툼이 있다. 즉 구멍이 있는 것이다. 그 구멍을 통해 실존이 내비친다. 노정하의 사진에서 희미한 유리를 통해 보이는 드레스 입은 자신의 모습은 체계에 들어갈까 말까를 고민하는 듯하다. 체계는 당연히 그녀를 붙들고 싶지만 그녀는 항상 고민한다. 모델로 모습을 바꾼 그녀는 생리의 피를 흘리며 잉태와 출산에 대해서 밑바닥에 이르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사진의 배경에 있는 야하고 요란한 금딱지는 금빛이 주는 화려함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한층 더 심란하게 만들어준다. 금딱지의 찬란함은 여성을 유혹하는 물질적 부에 대한 알레고리인 듯이 보이기도 한다. 아마 유혹과 고통 속에 시계추처럼 진동하는 존재가 여성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남의 일일 때는 말하기 쉬우나, 자신일 경우는 말하기 쉽지 않다. 사진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할 뿐 아니라, 독특한 방법을 요구하기도 한다. 노정하의 작업에서 돋보이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사진의 문법을 찾아가는 작가적인 태도이다. 자기 자신을 찍기도 하고, 모델을 써서 상황을 설정하기도 하고, 분장을 하기도 하는 다양한 연출기법을 통해 노정하는 어떤 식으로 사진 찍는 것이 정말 자신을 잘 보여주는 것일까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으려 하고 있다. 아마도 답은 그 어떤 방식에 있다기 보다 그 방법들 사이의 간극, 혹은 차이에 있을 것 같다.

                                                                                                                                            

          이영준/ 이미지비평, 2005

     What Jungha Noh has intended to achieve through her photographic work is to know of herself. That is, as she mentioned, about women’s destiny. As in the case of the proletariat who discovers a world of contradictions more frequently than the bourgeois, women, suppressed and discriminated by men, are able to see the world that is in no way seen for men. A special method, however, is required to reveal herself as a woman through photography. It’s hard to say that documentary photography is truly only a way to bare women’s true selves.

 

Every society has its own special system of images to represent women. Noh’s work seems to be an attitude towards such system. According to this system, women are born, made and disjointed. A woman probably remains disintegrated at the moment she is born in this way. Most of women today are interested in adorning and grooming themselves on a certain standard for beauty. As soon as she creates herself in line with this criterion, she turns to a part rather than a true self of woman. However, nobody regards himself or herself as a part of an entire system. Everyone lives under a system but one is not the system itself.

 

Punctum, through which our existence is reflected, is in a system, as was in a photograph. In one of her photographs a scene of herself in a dress is projected on the surface of glass. She seems to be in anxiety, whether to enter the system or not. The scene portrays herself shedding menstrual blood in profound anxiety about pregnancy and childbirth. A showy, flamboyant golden label in the background of her picture appears to represent allegorically a material fortune to seduce women.

 

Like the pendulum of a clock a woman is swing back and forth, suffering pain and temptation. A distinctive method and much courage are demanded to express oneself through the medium of photography. What’s particularly conspicuous in Noh’s work is her attitude striving to find her own language and grammar in photography. Through a variety of presentations such as taking herself, employing a model for a scene or making up herself as a role, Noh’s endeavors to find a solution to the best way to manifest herself. The answer is perhaps not in the method itself but in the gap among themselves.

2005, Lee Youngjun, Image Cri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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